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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중심의 삶을 살라 [26.03.29]

예루살렘 중심의 삶을 살라 더사랑하는교회 셀모나 (26.03.29) 느11:1-36
1 백성의 지도자들은 예루살렘에 거주하였고 그 남은 백성은 제비 뽑아 십분의 일은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서 거주하게 하고 그 십분의 구는 다른 성읍에 거주하게 하였으며 2 예루살렘에 거주하기를 자원하는 모든 자를 위하여 백성들이 복을 빌었느니라 (생략)
'어떻게' 보다 '어디서'가 중요하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의 역사를 회고하고, 하나님과의 언약을 다시금 견고히 세워 인봉했습니다. 그들은 율법에 기록된 대로 모든 규례를 준행할 것을 저주로 맹세하였고, 오늘 본문에서는 예루살렘 성에 거주하기를 자원했습니다. 앞에서 이들은 '어떻게' 할지를 결단했다면, 오늘 본문에서는 '어디서' 할지를 결단한 것입니다. 우리 신앙에 있어서 '자리'는 매우 중요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수많은 이야기에서도 '어디에 거주하느냐?'는 늘 중요한 이슈였습니다. 첫 사람 아담도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고 하나님을 피해 숨었을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첫 번째로 물으신 것이 '네가 어디 있느냐?'였습니다. 아브라함의 인생도 그가 어디에 거주하느냐에 따라서 그의 인생이 결정되었고, 야곱과 다윗도 그러했고, 신약 성경에 나오는 베드로와 마리아도 그러했습니다. 그들이 머문 자리가 그들의 인생을 결정 지었습니다. 오늘날 우리 신앙에 있어서도 중요한 것이 영적인 자리입니다. 곧 우리가 거하는 '영적인 거주지'가 중요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어떻게' 하느냐도 중요하지만 '어디서' 하느냐는 더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은 신앙과 삶에 있어서 영적인 거주지를 잘 설정해야 합니다. 우리가 어디에 거주하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신앙과 삶이 결정될 것입니다.


예루살렘에 거주하기를 자원하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루살렘에 거주하기를 자원했습니다. 먼저는 백성의 지도자들이 그 일에 앞장섰고, 백성들 중에서는 제비를 뽑아서 십분의 일만 예루살렘에 거주하게 했습니다. 그만큼 예루살렘에 거주하기를 자원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입니다. 혹자는 자원자가 너무 없어서 그런 것이라고 하지만 그들이 앞에서 저주로 맹세해 놓고, 예루살렘에 거주하기를 꺼렸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이것은 예루살렘에 살고자 자원하는 자가 많았음을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예루살렘에 거주하기를 원했던 것일까요? 예루살렘이 이스라엘의 수도로서 살기가 좋아서 그랬을까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예루살렘은 아무도 살지 않는 황폐한 성읍이었습니다. 그러다 가까스로 성전과 성벽을 다시 세웠지만 여전히 가옥도 없고, 기본적인 인프라가 구축되어 있지 않은 황무지와 같았습니다. 외부적으로도 언제 원수의 공격을 받을지 모르는 위험한 상황이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깨어서 성읍을 지켜야 했고, 그 일에 희생과 헌신을 각오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들이 그곳에 거주하기를 자원한 것은 그곳이 '거룩한 성'이었기 때문입니다.(1,18절) 곧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거룩한 성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비록 아무 것도 없는 황무지 같은 곳이지만 그곳에 거하시는 하나님의 가능성을 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가능성을 보는 것입니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루살렘에 거주하기를 원한 것은 하나님을 향한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과 열정이 모든 문제를 뛰어넘게 만든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사랑에 눈이 멀어서 이 땅의 것들에는 눈이 가려지고, 하늘의 보화, 곧 영적인 복에 눈을 뜨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 영적인 복을 사모하고 내 전부를 팔아서 그것을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에게 일어나는 기적이고 부흥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살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루살렘에 살기를 자원했지만 모든 자원자들이 예루살렘에 거주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들 중에 많은 이들은 예루살렘이 아닌 각 처에 거주해야 했습니다. 예루살렘에 거주한다고 하는 것은 꼭 육신이 그 성에 거주해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각자의 부르신 자리에서 예루살렘 중심의 삶을 살면 그것이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것이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모든 자원자들이 예루살렘에 거주할 수 없기에 십분의 일만 거주하고 나머지는 그 외 지역들에 흩어져 살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제비를 뽑아서 예루살렘에 거주할 사람들을 뽑았던 것입니다.
성경에서 사용된 제비뽑기는 단순히 공정함의 장치를 넘어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계시하시는 또 하나의 수단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제비를 뽑아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했습니다. 오늘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루살렘에 거주할 자들을 정할 때도 이 제비를 뽑은 것입니다. 곧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른 것입니다. 우리 신앙은 결국 부르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부르셨고, 야곱, 모세, 여호수아, 다윗을 부르셨고, 베드로와 사도 바울을 부르셨고, 또 오늘날 우리도 부르셨습니다. 우리가 선교사나 목회자처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특별하게 헌신을 하려해도 자원하는 마음만 있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자원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를 수 있어야 합니다. 부르심이 없는 자원하는 마음은 자기 욕심으로 흐를 뿐이고, 그렇게는 그 길을 결코 완주할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루살렘에 거주하도록 뽑힌 것도 하나님의 부르심이었습니다. 그리고 반대로 제비에 뽑히지 않은 사람들도 각각의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예루살렘 중심의 인생을 살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후반부(25-35절)에서는 각 처에 거주한 사람들도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들의 인생도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물론 예루살렘에 거주하면 더 좋습니다. 그런데 그러지 않아도 그곳에서 예루살렘 중심의 삶을 살면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서로 축복하고 격려하고 기도하라 백성들은 예루살렘에 거주하기를 자원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복을 빌어 주었습니다. 그들을 축복해 주고 격려해 주고 기도해 준 것입니다. 이들은 이번 한 번만이 아니고 매일 예루살렘을 위해 기도하며 물질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들은 그렇게 함께 예루살렘에 거주한 것입니다. 이들은 자신이 뽑히지 않았다고 시험에 들거나 나 몰라라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랐고, 뿐만 아니라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백성들을 위해서 축복해 주고 기도해 주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참된 공동체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 따라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에 대해서 서로 축복하고 격려하고 기도하며 함께 나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예루살렘 성에 거주하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그의 생애 마지막에 예루살렘으로 향하셨습니다. 곧 십자가를 향해 나아가셨습니다. 오늘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원한 예루살렘 중심의 삶은 다름 아닌 좁은 문 좁은 길, 바로 십자가의 길이었습니다. 우리는 그 길을 결단해야 합니다. 예루살렘 중심의 삶을 세팅하고 살아가야 합니다. 곧 믿음의 눈을 들어 하나님의 가능성을 바라보고, 하나님 한 분만을 더욱 사랑하며,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가는 그 길을 가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에게 일어나야 할 부흥입니다. 예수님께서 가신 십자가의 길을 따라갑시다. 예루살렘에 거주하기를 자원합시다. 그럴 때 그 길 끝에 참 생명이 있고, 놀라운 부흥이 임할 것입니다.





< 나 눔 >
1. 한 주간 감사했던 일 한 가지씩 나누어 봅시다.
2. 1) 요즘 내가 거하고 있는 '영적인 거주지'는 어디인지 돌아봅시다.
2) 최근 중요한 선택을 앞두고 있다면 나누어 보고, 오늘 말씀을 적용하여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분별해 봅시다.
3. 1) 부르심의 문제로 실망하고 시험에 빠졌던 일이 있다면 한두 사람이 나누어 봅시다.
2) 나를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해 나누어 봅시다.
4. 내가 축복하고 격려하고 기도해야 할 사람을 한 사람씩 떠올려 봅시다.
5. 기도제목
1) 예루살렘 중심의 삶이 되길 기도합시다.
2) 4번의 사람을 위해 기도합시다.
3) 열방의 선교지 위해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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