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더사랑하는교회 셀모나 (26.06.14)
고전1:26-31
26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28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29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30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31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
약한 자를 부르시는 하나님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를 쓴 첫 번째 목표는 고린도 교회 성도들의 기억을 깨우는데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바울은 '형제들아 너희의 부르심을 보라'는 권면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처음 부르심을 받았을 때 그들의 처지가 좋지 않았음을 상기시켰습니다.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않았고, 능한 자도 많지 않았고, 문벌 좋은 자도 많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세상적인 기준으로 잘난 사람이 많지 않고, 부족하고 연약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에도 보면 세상적인 기준으로 잘난 사람들 보다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물론 많이 배우고 가진 사람들도 있지만, 대다수는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에서 잘 나가는 사람들은 세상에서 쓰임 받느라 교회 올 여유가 없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인정받고 잘나가니 하나님 앞에 나아 갈 필요를 못 느끼는 것입니다. 다윗이 사울을 피해 아둘람 굴에 피신해 있을 때도 다윗 주변으로 환난 당한 자와 빚진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들이 모여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나중에 다윗의 용사들이 되고, 다윗 왕국의 핵심 인물들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부르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힘 있고 잘난 사람이 아닌 연약하고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을 부르십니다. 에서가 아닌 야곱을 부르시고, 살인죄로 40년을 도망자로 살아온 늙은 모세를 부르시고, 겁쟁이 기드온을 부르시고, 아버지의 양 떼를 치던 막내 다윗을 부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그 당시 세상적으로 별 볼일 없는 자들을 제자로 부르셔서, 사도가 되게 하시고 초대 교회 지도자들이 되게 하셨습니다. 2000년 기독교 역사 속에서 하나님께서 쓰신 위대한 사람들도 많은 경우 세상적인 기준에서는 자격 미달이었습니다. 가난한 환경에서 태어나 정규 교육도 못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위대한 설교자가 되고, 복음전도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날에도 연약한 우리를 부르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는 이유가 있다면 우리의 강함 때문이 아닌, 우리의 약함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약한 자를 부르시는 약한 자의 하나님이십니다.
자랑하지 말라
바울은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하고 약하고 천한 것들을 택하신 것이 지혜 있는 자들과 강한 것들과 있는 것들을 부끄럽게 하시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한마디로 우리 인간의 교만을 무너뜨리시기 위함입니다. 복음은 이 세상이 볼 때는 미련한 것이지만 사실은 이 세상의 지혜를 비웃으시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이 세상의 교만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하고 약한 자들을 불러 사용하시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세상의 지혜 있는 자들과 강한 것들과 있는 것들을 폐하시기 위함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겨냥하시는 것은 인간의 교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교만을 미워하시고, 그래서 교만을 심판하십니다. 교만은 우리 인간의 죄의 핵심입니다. 사탄이 사탄이 된 것도 교만 때문이고, 첫 사람 아담과 하와가 범한 죄도 결국 교만입니다. 자기 스스로 하나님이 되려 했던 것입니다. 그 결과 그들은 하늘에서 쫓겨났고, 에덴에서 쫓겨나게 된 것입니다. 교만은 우리 인간의 죄의 뿌리와 같습니다. 우리의 모든 죄가 교만에서 시작되기 때문이고, 반대로 뿌리처럼 땅속 깊이 박혀서 모든 죄가 제거된 후에도 끝까지 남아 있는 것이 교만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죄를 심판하시는 것은 궁극적으로 교만을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심판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약4:6) 이것이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겸손해야 합니다. 우리의 인생과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의 성패가 여기에 달렸습니다. 우리는 교만하면 곧장 추락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특히, 우리는 자랑을 주의해야 합니다. 교만이란 자기를 높이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자기를 자랑하고 과시하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자랑하기를 좋아합니다. 우리는 자랑하기 위해서 산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남들이 알아주는 것도 아닌데 우리는 끊임없이 자신을 자랑하고 과시합니다. 심지어 교회 안에서도 세상의 것들을 자랑하고, 또 영적인 것으로도 자랑합니다. 은사를 자랑하고, 사역을 자랑하고, 교회 규모를 자랑하고, 영적 체험과 기도응답을 간증이라는 이름으로 자랑합니다. 이것이 다 교만입니다. 이러한 교만은 우리에게 매우 해롭고 치명적입니다. 교만은 평소에는 우리 안에 숨어 있다가 우리가 정점에 올랐을 때 비로소 우리 뒤에서 슬그머니 고개를 들고 우리를 무너뜨리는 매우 무섭고도 치명적인 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무엇보다 경계해야 할 것은 교만과 자랑입니다. 우리 인간이 망하는 이유는 욕심 때문이고, 또 교만 때문입니다.
주 안에서 자랑하라
사도 바울은 교만을 이기기 위해서 우리의 시작을 늘 기억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바로 우리를 부르심을 늘 기억하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부르심을 받을 때 우리의 처지가 어떠하였는지를 기억하고 그 가운데 베푸신 놀라운 은혜를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의 교만은 자기 기만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스스로에게 속고, 속이는 것입니다. 자신이 그렇지 않은 사람인데 그러한 사람이라고 속이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따금씩 착한 행동을 할 때 내가 정말 선하다고 믿어버립니다. 신앙적으로도 이런 저런 신앙적 행위로 자신이 괜찮은 신앙인이라고 믿어버립니다. 그래서 우리가 교만에 빠지지 않으려면 우리의 영적인 실상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교만은 자신에 대한 잘못된 착각이고, 겸손은 자신의 실상을 아는 것입니다. 내가 얼마나 죄인인지를 알고, 내가 얼마나 연약하고 비천한 존재인지를 아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그저 잘 하는 것이 아닙니다. 무언가를 잘 해서 스스로 의인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참된 신앙이란 내가 얼마나 죄인인지를 아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서 내가 어떤 용서를 받았고, 얼마나 큰 은혜를 입었는지를 아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늘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교만은 다름 아닌 은혜에 대한 망각이고, 겸손은 은혜를 기억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기도 보다 기억이 더 중요합니다. 은혜를 받는 것보다 은혜를 기억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 기억이 우리의 힘과 능력이 되고, 우리를 여전히 살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은혜를 잊지 않는 기억은 우리의 기도를 더욱 깊고 강력하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우리는 자랑을 하려거든 주 안에서 자랑해야 합니다.(31절) 곧 나의 약함과 그 가운데서 베푸신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자랑해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모두 하나님의 은혜의 자랑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비추는 은혜의 영광입니다. 나를 높이지 맙시다. 나를 자랑하지 맙시다. 우리를 부르신 그 시작을 기억합시다. 그리고 우리의 약함 보다 크신 하나님의 은혜를 자랑합시다.
< 나 눔 >
1. 한 주간 감사했던 일 한 가지씩 나누어 봅시다.
2. 최근 은근히 자랑하거나 교만했던 것이 있다면 돌아보고, 나의 실상을 들여다봅시다.
3. 1) 나의 시작을 기억해 봅시다. 내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의 처지는 어떠했나요? 그 가운데 베푸
신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고백해 봅시다.
2) 그 은혜로 용서하고 사랑해야 할 대상을 찾아보고, 구체적으로 적용해 봅시다
4. 기도제목
1) 교만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합시다.
2) 3.2)의 영혼을 위해 기도합시다.
3) 여름 사역(단기선교, 수련회)을 위해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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